지난해 12월부터 88일간...또다시 200여 일째 중부발전 본사 앞에서 투쟁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관심을 모았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른바 ‘720가이드라인’이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만 울리고 있다.
직고용 또는 자회사를 전환해 ‘정규직화’ 실적을 올렸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용역시절 보다 못한 처우와 열악한 노동환경의 현실에 몰렸다.
직고용으로 전환된 국립생태원의 경우 2019년 노동자들은 파업과 단식투쟁을 이어가며 노동환경 개선의 목소리를 높였다.
2020년 중부발전의 경우 자회사인 중부발전서비스를 두고 정규직화를 도입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용역시절 못한 처우와 각종 갑질로 노동자들은 다시 길거리로 나서게 됐다.
지난 7월 22일 한국중부발전 본사 어귀마당서 열린 세종충남지역노동조합의 자회사 철폐 및 직고용 요구 규탄결의대회에 참석한 민주노동 양경수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그리고 대통령이 첫날 인천공항을 찾아서 약속했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약속, 그날 인천공항 그 자리에 있던 11명의 노동자들 중에서 6명은 자회사로, 4명은 퇴사로, 1명은 임용과정에서 탈락으로 투쟁하고 있다.”며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공부분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민낯이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7월 중부발전은 경비직원의 근무 중 ‘개 물림’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 및 피해 회복을 위한 책임이 피해 직원의 몫으로 넘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특수경비 및 청소노동자들의 화장실 및 식수 등에 의혹과 관련 ‘폐지된 보령화력 1.2호기 휴게실에서 1명이 사용한 것’이라는 등의 답변만 밝혀 당시 현장을 항의 방문했던 보령시의원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내부 정보유출’ 명목으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노조 지회장에 대한 2차 가해 의혹도 나왔고, 이와 관련 ‘재량권을 남용한 징계처분으로 볼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중부발전 본사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에 따라 밀접 접촉자 및 전 직원 등에 대한 선제적 검사가 진행 되는 가운데 자회사인 경비노동자들에 대한 검사 처우에 대한 차별이 발생했다는 의혹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들과 지역 시민단체, 정치권까지 나서 중부발전이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던 중부발전은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지난해 12월부터 88일 동안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대통령 방문에 따라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와 반대로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은 200여 일을 보내고 있다.
▶ 태생부터 잘못된 ‘자회사 설립’
노동자들은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전환은 또 다른 비정규직을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비리로 얼룩진 자회사 설립 자체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 실패 원인이라고 말한다.
노조에 따르면 실제 한국남부발전의 자회사의 경우 직원에게 수당을 과다 지급한 뒤 관리자에게 페이백 해주는 사건으로 경찰이 수사 중이다.
또, 공익제보자에 대한 부당징계 논란, 병가사용 제한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자회사의 경우 설립 초기부터 정규직전환 노사전문가협의회 합의사항 이행 투쟁을 시작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회사의 책임을 물어 현재까지 직접고용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중부발전의 자회사인 중부발전서비스는 정규직전환협의회 합의사항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21일부터 88일간 정규직전환 협의회 당시 모회사가 약속했던 ▲낙찰률 95% 적용으로 노동자 처우 개선 ▲사내복지기금 23억 원 출연으로 자회사 노동자 복지 수준 강화 ▲모회사, 자회사,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3자 노사협의회 운영으로 근무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또, 자회사 노동자 근무환경 문제로 실제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이 열악한 문제, 경비노동자들의 초소 간 화장실 미설치, 식수 문제 등으로 보령시의회 의원들이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공익제보자에 대한 2차 가해 논란, 부당징계 논란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회사 관리자들의 각종 비리문제로 중징계를 받거나 수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모회사의 과도한 경영개입도 논란이 되고 있다.
중부발전서비스 사장은 초대 사장부터 현재 3대 사장까지 모두 모회사 고위직 출신이 선임됐고, 이사회의 경우 모회사 관리자들이 겸직하고 있어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다.
실질적으로 모회사인 한국중부발전 입맛대로 운영된다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정치권의 관심...결과는?
한국중부발전 자회사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1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보령 방문일정에 맞춰 타운홀 미팅 당시 중부발전 특수경비지회 전근수 지회장이 이재명 후보에게 중부발전 자회사, 아름다운CC 노사문제 등을 언급하며 “자회사 노동자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 달라”며 ‘이재명 후보님께 자회사 노동자가 전달하는 한국 사회 자회사 실태’문서를 직접 전달했다.
이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지난 8월 보령방문 당시 자회사 노동자 근무 환경 문제와 2차 가해 문제, 자회사 구조 문제 등이 논의됐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태흠 의원(국민의힘, 충남 보령.서천)의 경우 뉴스스토리, 보령투데이, 충청뉴스피플 3사 공동 인터뷰 당시 “중부발전 자회사 문제에 대해 계속 보고받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류호정 국회의원은 지난해부터 진행된 88일 투쟁과 현재 진행 중인 투쟁에 각종 자료제공, 중부발전 담당자 국회 소환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지난 국정감사에서 서면 질의를 통해 한국중부발전에 강한 질책과 함께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도 했다.
같은 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이정미 전 대표 또한 지난 9월 투쟁 천막을 직접 찾아 문제점에 관한 얘기를 청취하고 도움을 약속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정의당 이선영 충남도의원과 도당 당직자, 보령.서천지역위원회 등도 지속적으로 연대 중에 있다.
진보당의 경우에도 대선후보인 김재연 상임대표가 직접 투쟁 중인 천막을 격려 방문하고, 도당 관계자들과 당원들이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중부발전 자회사 노동자 투쟁 ‘200일’...어디까지 왔나?
정치권의 관심에도 사태 해결에는 조금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노조 관계자는 “집회 초기 한국중부발전은 자회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는커녕 집회 방해에만 몰두했다”며 “자회사 노동자들의 집회에는 전기를 제공할 수 없고, 자회사 노동자들은 개방형 공간인 본사 1층에 출입도 제지했다. 심지어 노조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소 이용까지 제한하는 등 노조탄압만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회사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와 투쟁을 벌이고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대화를 통해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벽을 쌓아두고 노동자들을 밀쳐내기 급급했다”며 “모회사와 자회사 관계면 부모와 자식 간인데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나마 한국중부발전의 자회사 담당자가 바뀐 후 대화의 기류가 형성된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노조 측은 “집회 160여 일 만에 처음으로 모회사 담당자들과 면담할 수 있었다”며 “아직까지 유의미한 변화는 없지만 그래도 대화 창구를 개설한 것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까지 견해차가 있어 사태 해결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찰우 기자